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밀리 브론테 (문단 편집) == 성격 == 그녀에 대하여 본인이 남긴 기록은 두 통의 편지와 앤과 같이 쓴 일기장, 오빠 브란웰 브론테가 남긴 일기장에 가끔 쓰여진 그녀 이야기밖에 남아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기록은 그녀의 언니인 [[샬럿 브론테]]와 앤 브론테,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의 스승이자 샬럿 브론테가 오랫동안 연모했던 콘스탄틴 에제, 샬럿 브론테의 친구들과 그녀의 마을 주민의 증언, 그리고 샬럿 브론테의 사후, [[브론테 자매]]들의 전기를 쓴 동시대 작가 엘리자베스 게스킬[* 이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에 번역된 것은 <크랜포드>, <남과 북> 이 있다.]의 기록이 전부여서 그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녀의 언니 샬럿 브론테와 샬럿 브론테가 연모했고 평생 잊지 못했던 스승 콘스탄틴 에제와, 샬럿의 친구들이 남긴 기록들과 에밀리 브론테 본인과 동생인 앤의 기록들을 보면 그녀의 성격은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었지만, 한편으로는 거침없고 야성적이며 자기 주장과 자존심이 강했고[* 여기에 대해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에밀리가 기르던 개 키퍼가 마을의 다른 힘센 개와 맞붙었다. 에밀리 집의 하인이 이걸 알고 집에 있던 에밀리에게 이야기를 하자, 에밀리가 즉시 부엌에서 후추를 들고 나왔다. 개들이 서로 목을 물어뜯고 있었고, 사람들은 겁이 나서 개들의 싸움을 말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에밀리는 한쪽 팔로 키퍼의 목을 붙잡고는, 다른 팔로 개들의 콧구멍에 후추를 뿌렸다. 그녀는 남자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가운데" 키퍼를 끌고 집으로 사라졌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Winifred Gerin, <>(London: Oxford University Prees, 1971) 147p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연구가인 데버러 러츠가 지은 브론테 자매 평전 한국 번역본 책의 145P~146P, 365P에 나옴.] 또 다른 자매들에 비해 공상과 사색이 많았고, 그녀의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고 한다. 샬럿은 에밀리를 회상하며 "말수도 없고 속도 모르겠다며 어디에서도 내 동생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고, 또 한편으로 에밀리가 고향인 요크셔의 황량한 황야와 거센 바람을 너무나 사랑해 에밀리 사후, 그녀가 개정해서 출판한 [[폭풍의 언덕]]의 머릿말에서 "이 책의 지은이는 황야에서 태어나 황야의 젖을 먹고 자랐다. ... 그녀에게 고향 황야의 언덕은, 하나의 광경이라 하기에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그곳에 사는 들새나 그곳에서 자라나는 히스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그로 인해 생명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후에 영국의 전설적인 여성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평소 황야를 예찬한 아버지와 또 그녀가 매우 존경했던 에밀리 브론테의 영향을 받아 자신도 황야를 동경해 에밀리 브론테의 고향인 [[요크셔]]의 하워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샬럿은 또 에밀리가 자유를 매우 중시한 면에 대해서는 "에밀리는 황야를 사랑했다. 그토록 어두운 저 황야에도, 그녀가 보기에는 장미보다 더 빛나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녀는 납빛 산허리의 오목한 부분을 낙원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스산함과 쓸쓸함 속에서 수없는 마음의 기쁨을 발견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것은 자유였다. 자유야말로 에밀리의 콧속을 지나 흐르는 숨결이었고 그녀는 그것 없이 살아갈 수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유를 중시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집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그만큼 목숨을 걸고 올바르게 사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면모도 분명히 있었다. 즉 그 누구 못지않게 자유를 갈망했지만, 그만큼 목숨을 걸고서라도 올바르게 사는 것 역시 매우 중시했다는 것. 그래서 유부남이었던 에제를 사랑해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로, 그리고 편지로 계속 전하며 애태웠던 샬럿 브론테(하지만 에제는 그녀의 고백을 단호히 뿌리쳤다고 한다)에 비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래서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그녀는 정신적 순결을 간직했고, 그녀보다 엄격하고, 그녀보다 용감하고, 그녀보다 올곧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고까지 말했다.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모두를 가르쳤던 콘스탄틴 에제는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남자로, 그것도 위대한 항해사로 태어났어야 했다."라고 말했고, 또 그는 샬럿 브론테보다 에밀리 브론테를 더 높이 평가해 "에밀리 브론테의 논리성과 논쟁 능력은 남자에 견주어도 뛰어나고, 여자에게는 참으로 드문 것이나 그녀의 완고한 성격 때문에 그녀의 재능이 손상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키우는 동물들을 법도에 맞게 다루면서도[* 여기에 대해서도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애밀리 브론테가 기르던 동물들 중 각별히 아꼈던 개였던 키퍼의 경우 브론테 집안에 오기 이전에 자신의 잘못에 벌을 주려는 사람의 목을 물려고 한 전력이 있었고, 또 힘이 세 브론테 자매들의 이모와 브론테 집안의 가정부는 키퍼를 무서워했다. 키퍼는 자신의 예전 성질대로 제멋대로 행동했고, 이러다가 개가 집에서 쫓겨날 것을 우려한 에밀리는 키퍼를 끌고 구석으로 가서 주먹으로 개의 눈가를 계속 갈겨 개의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두들겨 패서 제압한 후 개를 부엌에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이후 키퍼는 에밀리에게만 절대 충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에밀리 브론테의 일기 원본이 아닌 복사본에만 실려 있는 상태고, 또 샬럿 브론테와 평소에 매우 절친했던 사이였으며 또 샬럿 브론테의 사후 브론테 전기를 쓴 동료 여류 문인인 엘리자베스 게스킬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줬다고 하지만, 일부 브론테 연구자들은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는 Clement Shorter, <> (Westport, CT: Greenwood, 1970)와 <> (New York: Penguin, 1997)의 200~201P. 우리나라에서는 뮤진트리사에서 출판된 미국의 빅토리아 시대 연구가인 데버러 러츠가 지은 브론테 자매 평전 한국 번역본의 135P, 363P에 나옴.] 가족처럼 매우 아꼈고, 또 어느 날 한 떠돌이 개에게 물을 주려다 팔을 물려 상처를 입었고, 이후 혹시나 광견병에 걸린 개가 아니었을까 싶어 불에 달군 후라이팬을 상처에 대어 지지면서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견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가 자신의 절친한 지인이자 자신의 사후 자신의 전기를 쓴 엘리자베스 게스킬에게 한 이야기이다. 출처: <> 200P, 우리나라에서는 데버러 러츠가 지은 브론테 자매 평전 한국 번역본 책의 146P, 365P. 에밀리 브론테는 마음 약한 사람들이 놀랄까 봐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이 사건을 털어놓았다고 하고, 이 이야기는 에밀리 브론테를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 때로는 권총 사격을 해서 소령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샬럿은 에밀리 브론테를 커다란 황소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론 에밀리 브론테는 이 비유에 매우 화를 내었다고 한다. 샬럿이 지은 소설인 [[셜리]]는 에밀리 브론테를 모델로 지은 소설이다. 샬럿의 사후 자신의 전기를 쓴 엘리자베스 게스킬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셜리는 "에밀리가 만일 건강하고 부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를 가정하고 만든 소설이라 한다. 이렇게 강하고 올곧은 에밀리 브론테에 관해 폭풍의 언덕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 중 하나라고 극찬한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그녀는 정신적 순결을 간직했고, 그녀보다 엄격하고, 그녀보다 용감하고, 그녀보다 올곧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가 꼭 이렇게 한편으로는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면모와 또 한편으로는 강하고 야성적이고, 지적인 면모 외에 의외로 활달한 면도 있었다고 한다. 샬럿의 지인인 엘렌 너시가 브론테 집안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집안에서는 매우 다가가기 어려운 에밀리가 들판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즐거워하고, 어린 아이처럼 물 속 올챙이와 장난을 치는 모습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해 폭풍의 언덕에서의 [[폭풍의 언덕#1.4.2|캐서린 언쇼]]의 모습이 있어, 그녀가 폭풍의 언덕을 쓰면서 캐서린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그 누구 못지않게 자유를 중시한 면모도 상당히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폭풍의 언덕의 모티브가 된 자신의 고향 하워스를 무척 사랑하여서 그곳을 떠난 석 달 간 향수병 때문에 몸이 야위기도 했다. 아무튼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또 결정적으로 폭풍의 언덕의 내용과 문체가 너무나 거칠다 보니 폭풍의 언덕을 여자가 썼을 리 없다는 얼빠진 주장이 진지하게 나왔지만 이는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